<열린 문, 닫힌 문>,<양털 뭉치>가 아닌 하나님이 주신 인식 능력을 사용해 판단한 경우를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사위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사울의 사위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열린 문, 닫힌 문이나 양털 뭉치 방법, 혹은 초월적인 방법 같은 것은 없습니다.
바울이 아덴에 머문 것은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또 바울이 디모데를 보낸 것도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을 스스로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성경 구절들은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한 경우들입니다.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고후9: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저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빌2:25~26)
그러나 그 마음을 굳게 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처녀 딸을 머물러 두기로 마음에 작정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고전7:37)
다음의 성경 구절들은 '합당하다'고 여겨 결정한 경우들입니다.
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거든 재판장은 그를 엎드리게 하고 그 죄의 경중대로 여수히 자기 앞에서 때리게 하라(신25:2)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마10:11~12)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저희가 나와 함께 가리라(고전16:3~4)
이 구절들에서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사용하여 자유롭게 결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자유롭게 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유의 기쁨을 우리도 성숙함으로 맛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내 뜻인가, 하나님 뜻인가'/정요석
[예고:믿음이 있는 자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