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크리스천

거듭나기(5)

malmiama 2001. 4. 30. 09:57
성령 충만 : 진리 가운데 거함

성령님의 다섯 번째 사역을 요한복음 16장 13절은 이렇게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들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님께서 하시는 다섯 번째 사역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까? 진리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진리 가운데 있는 사람이란 과연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은 세 가지로 풀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13절을 다시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라고 하셨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자의로, 곧 함부로 말씀하시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진리 가운데에 있다는 것,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혹시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집 안에 도둑이 들어서 정말 아끼는 물건을 도둑맞아
본 적 있습니까? 그런 일을 당했다면 굉장히 속상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누군가 억대가 넘는 결혼 예물 반지를 도둑맞았다고 속이 상해서 자살했다는
얘기를 저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도둑맞는 일은 대단히 속상하고 가슴아픈 일이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됩니다. 그러나 말은 사람을 죽입니다.

사무실이나 학교에서 누군가의 돈지갑이 없어졌을 때 몇 사람이 수군거립니다.
"쟤가 도둑일 거야" 그 결과, 그 말을 들은 아이나 직원이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자살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봅니다. 어느 며느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집 시어머니는 얼마나 먹성이 좋은지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기 때문에
내가 바빠 죽겠다." 그 말을 들은 시어머니가 그 날로부터 곡기를 끓고 굶어 죽었다는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말은 사람을 죽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가 성령 충만한자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한자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하다고 소문난 교회일수록 말이 많으면서 분란이 끊이지 않는
경우를 봅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일 수가 없습니다. 신앙은 훈련입니다.
그리고 그 훈련은 곧 말의 훈련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해서
우리의 말이 하루아침에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속에 있는 어두운 것들과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자의로 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바르게 전파하고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될 말을 가리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은 계속해서 성령님에 대해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도 하나님으로부터 듣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는 함부로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던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입니다.
예배시간에 똑같은 설교 말씀을 듣는데도 우리 각자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다 다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삶의 자리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통해서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귀기울여 듣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 개신교, 아니 전 세계 개신교도들에게
가장 결여되어 있는 이 부분입니다. 세계의 프로테스탄트 교인들에게 침묵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를 가든지 개신교도들은 말이 많은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구교의 수도사들이 볼 때, 프로테스탄트들이 하는 말은 마치 속이 빈 깡통 소리처럼
들립니다. 진리를 위한 침묵이 배어 있지 않는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듣는 법을 훈련해야 합니다. 물론 소리내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하며 땅을 치고 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울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을 하나님께서 왜 주셨는지, 내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무릎 끓고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인생은 모래시계입니다. 모래시계의 특징은 지나간 시간이 눈에 보일 뿐 아니라
남아있는 사간 역시 보인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가 지났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모래시계 윗 부분에서 24시간만큼 모래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윗 부분에서 24시간만큼 공백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역사를 되돌아보면서도 그 역사의 교훈을 자기의 삶에 적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권력을 쟁취한 사람들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보십시오.
그들이 왜 역사를 모르겠습니까? 그들은 틈이 있을 때마다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문제는 그들이 미래를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현재와 과거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야 똑같은 잘못을 거듭할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을 쥔 오만한 자들이 역사 속에서
권력의 최후가 어떠했는지를 본다면, 오늘 자신이 권력을 남용할 때 내일 그 삶이
어떻게 될는지가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지 않기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누가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까? 내일을 보는 사람입니다.
모래시계의 비어있는 시간을 영원으로 채워 가는 사람입니다. 그 때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날마다 날마다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 이재철 목사님의 모교회 사경회에서의 설교말씀을 재 편집한 것입니다.

P.S 5월 부터는 이틀 간격으로 글을 올릴 계획입니다. 저의 쓰는 부담과
독자 여러분의 읽는 부담(읽어 줘야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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