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호오

바지

malmiama 2005. 8. 11. 09:00

저는 다섯 살이 되어서야 말이 트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뒤로 글과 동시에 깨우쳐 잘하면서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는데, 말만 잘한 게

아니라 호기심도 많아 묻기도 잘하고 참견도 잘하는 아이였답니다.  어머니가 화장대 앞에

앉아 계실 때면 옆에 바짝 붙어 꼬치꼬치 캐묻기 일쑤였고 어머니가 외출하시면 스스로

화장을 해서 여자로, 귀신으로 변신하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통학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했었는데 3학년 때 일입니다.
대부분의 꼬맹이들이 그렇듯이 등교하기 위해선 저 역시 항상 바빴습니다.  미리 미리 준비

하거나 일찍 일어나는 제가 아니었고, 어머니는 소지품이나 과제물을 챙겨주지 않는 냉정파

였기에 아침이면 정신이 없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그 날도 매우 바빴습니다.

 

허겁지겁 서둘러 통학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아 한 숨을 돌리는데, 옆에 앉은 녀석이 제 아랫

도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이런~!  아뿔사! (그때도 이런 단어를 구사했던 것 같습니다)

바지를 안 입은 것이었습니다.  당시 교복은 빵떡모자에 와이셔츠와 나비넥타이, 빨간 콤비,

그리고 까만 타이즈에 까만 반바지였는데 깜박 잊고 반바지를 안 입고 나온 겁니다.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까만 팬티 스타킹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날은 토요일이었습니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끝 시간은 항상 학예회를 했습니다.

팬이 많았던 저는 그 시간에 반드시 앞에 나가야만 했습니다.  그 날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중

하고 있었는데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하며 아이들이 성화였습니다.  결국, 고민을 하다가

다음 순서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곤 저보다 훨씬 작은 짝꿍녀석을 협박해서 바지를 벗겨

입고 출전했습니다.

 

한 차례 너스레를 떨고, 앙코르로 노래도 하고 위세당당 들어와서 자리에 앉는데, 그만...

'부욱~!' 바지 가랑이가 찢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쩝니까?  짝궁에게 미안감했지만......

 

어쩔 수없이 짝꿍도 바지를 벗어 버렸고 둘이 붙어 사이좋게 집에 갔습니다.

(마치 개그코서트에 나오는 ...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이후로 저는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바지를 입었나 꼭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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