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크리스천

하늘 가는 밝은 길(2)

malmiama 2004. 12. 19. 21:23

이 번 글은 곽경호 집사님의 글입니다.   김혜경 자매와 같은 연배로 그녀를 우리 교회로 인도한 분입니다.   교회 홈피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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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자매 이야기-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례식]

그날(2004년 12월 10일), 오후 5시쯤 용평에서 막 올라와 흰 천을 들추고 바라본 혜경자매의 얼굴은 너무나 평화로웠습니다.  
뼈밖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이마에 손을 갖다 대어보니 아직은 따스한 기운이 남아 있었습니다.

밤 9시, 장의사에서 와 염을 하고, 11시에 입관예배, 내일은 또 12시에 발인예배, 오후 3시 부평에서 화장식……
누워있는 혜경자매와는 상관없이 이미 모든 스케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문득 지난 7개월간의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20여 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혜경자매가 암투병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바람결에 들려왔습니다.   연락을 해서 만났고, 만나자마자 다짜고짜로 “교회가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글쎄, 세상에, 의외로 너무나도 쉽게, “그래”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의 “그래” 그 한마디가 천국계단으로 향하는 첫걸음이었고, 말 그대로 천국문을 여는 키워드였습니다.

교회 가는 길에, 집으로 오는 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처음에는 금요 심야예배와  주일예배, 일주일에 두 번씩 교회에 갔습니다.   그 만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시기였었지요.   그때는 그래도 아직은 기력이 남아 있었고, 성깔도 남아 있었던 때라 입만 열면 욕이었고 원망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웬만해선 말이 없는 무뚝뚝이 아내가 “혜경언니 욕 좀 그만 했음 좋겠어” 한마디 했습니다.

 

오진을 했다던 의사와 세상에 대해 부정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마도 '나는 은하로 춤추러 간다'는 유언을 남기고, 금년 8월에 죽은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죽음학’의 대가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zabeth Kubler Ross)가 말한 ‘임종환자의 심리적 다섯 단계’ 중 첫번째 단계인 ‘부정’(disapproval)과 두번째인 분노’(anger)의 시기쯤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혜경자매는 처음으로 온 그날부터 우리 예빛교회를 좋아했습니다.   
첫눈에 반해 버린 것이지요. “야, 곽경호 니네 교회 참 좋다야.” 분노와 욕설의 시기에 그 정도의 표현은 최고의 애정어린 찬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우리 교인 모두가 사랑으로 혜경자매를 끌어안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이렇듯 분노를 녹여 소망의 씨앗 하나를 가슴에 품게 했습니다.   그것이 싹이 트고 뿌리를 내려 천국을 향한 나무 한그루를 혜경자매의 가슴속에 키우게 했던 것이지요.

늦은 봄에 만나 어느덧 겨울, 혜경자매를 하늘나라로 보내는 지금까지, 모든 게 퀴블러로스의 
이론대로 진행되었습니다.   ‘부정과 분노의 단계를 지나 점차 현실을 바라보고 적응을 시작하면서…’ 셋째 단계인 ‘타협’(bargaining)의 단계로 들어갔고, ‘용서와 화해를 하는 시기’라는 넷째 단계인 ‘우울’(depression)의 계곡을 지나 ‘감정적으로 공백기’라는 마지막 다섯번째 단계인 ‘수용’(acceptance)의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표현’이라고 퀴블러로스는 그의 역저 'on Death and Dying'에서 적고 있습니다.(언젠가 기회가 되면 마지막 단계인 ‘수용’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혜경자매가 하나님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 ‘수용’에 대해서……)

어쨌든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다섯 단계를 거치는 동안 제가 할 수 일이 단 한가지도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와 교인들은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오로지 기도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7개월 동안 김혜경 자매를 위해 기도하게 해주시고, 그것이 은혜의 통로였음……"을 고백하는 홍전도사님의 기도가 얼마나 제 가슴을 파고 들던지요.

그날 밤, 9시가 지나서야 장의사에서 와 염을 하였습니다.   11시에 있을 입관예배를 위한 사전
작업이었지요.   혜경자매가 누워있는 그 좁은 방에는 지인들로 가득 찼습니다.   낮에 전화했을 때 대구에 있던 원종배 아나운서가 부인과 함께 왔고,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게 된 수원이 엄마, 수원이는 일산승리교회에서 주차요원으로 봉사하고 있는 가수 서유석 집사의 딸 이름입니다.

 

늦은 시각 전화 드렸더니 바로 달려온 조선일보의 정중헌 논설위원, 만두집 혜남이 언니, 조은숙. 선숙 집사님 자매,그리고 지난 10여년간 혜경자매의 주소지가 되준 최연진씨… 모두가 반가운 얼굴들이었습니다.   물론 혜경자매가 알고 지내던 사람의 천분의 일도 안 왔지만 그러나 혜경자매를 진정으로 사랑한 일당백의 조문객이 있어 결코 외롭지 않은 밤이었습니다. (맛있는 죽과 동치미를 병원으로 보내주었던 싸이 엄마는 아들 싸이가 작사상을 받게 되어 시상식에 가야 해서 못 오고,

혜경자매에게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었던 디자이너 한혜자 선생은 자금 막 미국에서 오는 길이라 내일 오겠노라 했습니다).

뼈밖에 남지 않은 몸을 닦아내고 베옷으로 갈아입힌 뒤 마지막으로 얼굴만 남겨두었을 때쯤
우리 교인들이 도착했습니다.   ‘천국’ 간 게 아니라 ‘하늘나라’에 갔다고 우기는 유민이가 조문객들 사이로 끼어들었습니다.   아마도 베옷 입고 누워있는 혜경자매 모습이 낯설었던 게지요.

기도하고, 찬송하고…… 입관예배를 마쳤습니다.

다음날 12시, 발인예배를 위해 다시 모였습니다.
전날 오지 못했던 한혜자 선생과 작가 한수산씨 부인 이성순 여사가 오셔서 발인예배를 드리면서
함께 했습니다.
어젯밤 누군가가 제게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너무 초라하다, 영안실에라도 모시지……”
그 얘기를 한선생께 했더니 “그게 뭐 중요해, 이렇게 교회식구들이 사랑으로 예배드리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너무너무 복된 장례식이야”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평 화장터에서 마지막 예배를 드리면서 그때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가장 축복받은 장례식이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례식……’
50여년 살았던 ‘그쪽’이 아니라 단 7개월간 함께 했던 ‘우리’에게 장례식을 맡겨주시고, 떠나가는 혜경자매를 위하여 이렇게 다섯번씩 예배를 드리게 하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축복된 장례식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 혜경자매와 동행하면서 친구 삼으신 아버지, 당신의 멋진 작품이었기에, 2004년 12월 11일에 있었던 혜경자매의 장례식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례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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