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은 크리스챤의 그릇된 행동이나 실수를 보고
[기독교는 못 믿을 종교]로 치부해 버리기 십상입니다.
크리스챤이 경솔하게 살면 세상 사람들에게 말거리를 주게 되고
기독교 진리 자체에 의심의 말을 던질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들은 단순히... 크리스챤이 된 사람은 마땅히
[전보다 나아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마치 크리스챤 전체가 비크리스챤 전체보다
어느 때든지 더 호감을 주어야만 기독교를 믿겠다는 식입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반박하거나 잘 참으며 설명 한다고 해도
스스로 확실한 논리가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 오히려 서로 상처만 생깁니다.
그들은 '좌우간 기독교는 못 믿을 종교!'..라고 말을 끝내거나,
약간의 인정과 참을성이 있는 사람 같으면 그냥 넘어가 주거나 하겠지요.
이럴 때...이런 경우를 당했을 때 답답하고 억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찌하오리까?
................ Clive Staples Lewis의 말을 빌어 정리해 보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요구하는 다구침에는 아주 비논리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요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근거에서 타당하지 못합니다.
1. 크리스챤 중에는 서서히 신앙을 버리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상당히 많습니다. 성직자 중에서도 있습니다.)
2. 크리스챤이 아니지만 서서히 크리스챤이 되어 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완전히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깊은 의미에서 크리스챤일 수 있습니다.)
3. 다른 종교를 믿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은밀한 영향을 받아
서서히 그리스도께 속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비록 모순되는 믿음들이 뒤엉켜 있더라도 말입니다.)
따라서 크리스챤과 비크리스챤을 집단 대 집단으로 나누어 판단하는 것은
바른 태도가 못됩니다. 논리적으로 성립이 되질 않습니다.
개와 고양이, 또는 남자와 여자는 명확히 구분이 가능하므로 집단 대 집단의
비교를 할 수 있지요. (개가 고양이로 변하는 경우는 없으니까..)
사람들이 크리스챤과 비크리스챤을 비교할 때는,
대개 자기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구체적인 인물이 아니라
소설이나 매스컴에서 얻은 막연한 개념만을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나쁜 크리스챤과 좋은 무신론자를 비교하고 싶다면
실제로 만났던 구체적인 인물 두 사람을 놓고 생각해야 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모순이므로, 가치없는 대화로 시간만 낭비하게 됩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꼬집어 생각해서 논리를 펴는 비크리스챤의 경우
다음과 같은 새로운 질문(약간 수준이 높은)이 가능할 것입니다.
만약 기독교가 믿을만한 참된 종교라면 이런 결과가 나타나야 된다! ..라고.
크리스챤이면 누구나
[크리스챤이 되지 않았을 경우보다...크리스챤이 되기 전보다는 더..]
... 호감을 주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맞습니까? 말이 됩니까?
이 논리를 치약 광고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만약에..
A라는 회사의 치약광고가 참되다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타나야 합니다.
이 치약 사용자는...
[누구나 이 치약 비사용자보다 더 좋은 치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치약을 사용하기 시작한 자는...
[누구나 치아가 전보다 더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 치약을 사용하고 있는(시원찮은 치아를 갖고 있는) 사람이
이 치약을 구경도 못한 건강한 치아를 갖고 있는 사람의 고운 이를
갖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광고가 참되지 못하다고 할 수가 있습니까?
.........................
일단은,
막연한 기준으로 집단 대 집단으로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과
호감이나 도덕적 기준으로 기독교를 못 믿을 종교라고 매도하는 것은
[매우 비논리적이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밝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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