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리정돈을 잘 못한다. 정리정돈이라는 말은 나와는 인연이 멀다.
<잘 못한다> <인연이 멀다>라는 말은 그 심각함에 비해 부족한 표현이다.
어릴 때부터 내가 있는 곳은 늘 지저분하고 정돈이 안 되어 있었다.
나만의 방을 갖기 전까지는 형의 책임이요, 아님 동생의 잘못이었다.
중학교 때 내 방이 생긴 후에는 바빠서 정리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요,
시간이 있더라도 정돈 할 서랍장이 없고,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으며,
버리기를 아까워하는 근검 절약 내지는 꼼꼼함 때문이었다. ^^
외할머니가 계실 때는 늘 대신해 주셨기 때문에 혼 날 일이 없었지만...
안 계실 땐 어머니로부터 주기적인 잔소리를 들어가며 살았던 기억이 난다.
군대에서도 <왜 카츄샤처럼 캐비넷도 안 주고 사람을 못살게 굴지?>
하며 투덜댔으며, 결혼을 한 후에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신혼 초에는 <헛점이 보여 좋다>라는 말로 아내가 위로를 하기도 했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아내의 눈꼬리가 점점 올라감을 직시하고
조심...조심...두근두근. 하지만 그게 어디 뜻대로 되는가?
나와는 달리 아내는 어쩜 그렇게 수건, 속옷 등을 각지게 잘 개고...
있을 곳에 잘 두고 하는지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아직까지도 나는 뭘 찾을 때 거의 아내의 도움에 의지하는 나약함을 보인다.
하남에 살 때 일이다.
큰아이와 작은아이... 둘 다 멀쩡한 자신들의 방을 놔두고 거실에서 자는게 아닌가.
들어가 보니 녀석들의 방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밟지 않고는 걸을 수가 없을 정도이고
그냥 발로 슬슬 밀면서 걷다보면 칼이나 가위 등에 베거나 찔릴 위험성도 있다.
그냥 자면 등이 아프고, 치우자니 엄두가 안 나고...해서 아이들은 거실에서 자는 것이다.
<정리정돈 부재>인자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유전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거실만 어지럽히지 않으면 웬만하면 봐 줄 생각을 하고 방치(?)했던 것 같다.)
요즘의 내 삶은 비교적 잘 정리 정돈되어 있다.
적어도 직장에서만큼은 마치 정리정돈을 잘 하는 사람인 것처럼 허세를 피우기도 한다.
'청소 좀 하자...적어도 자신의 주변은 스스로 잘 정리정돈 해야지~ 앙!'
'정리란 쓸 데 없는 걸 버리는 거고, 정돈이란 쓰기 좋게 제자리에 놓는 것!!'이라며
제법 정리정돈에 대한 논리 정연한 강의를 할 줄도 안다.
집에서도 벗어놓은 옷은 아내가 투덜거리며 치우기 전에 잘 숨겨 놓는다.^^
이불도 장롱에 마구 넣었다가, 아내보다 앞서 꺼내어 깔기 때문에 무난하다.^^
우리가정 좋은 가정..., 오랜 기간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드러내야 치유가 된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