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탕, 곰탕...얘기가 아니라 목욕탕 얘깁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일지라도 가끔은 대중 목욕탕엘 갑니다.
요즘엔 때 빼고 광내기 위함 보다는 쉼을 위해 찾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목욕탕이라는 말보다는 사우나 또는 무슨 온천이라는 과대 간판을 내 걸기도 하고,
'휴게텔', '고추잠자리'와 같은 수면을 주목적으로 한 목욕탕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노래방, PC방의 인기에 편승한 찜질방이나 불가마 솥도 있습니다.
처음 생겼을 땐 여자들만 들어 갈 수 있었던 곳이지요.
우리나라 목욕문화가 워낙 빠르게 발달하다보니 최근엔 오히려, 다양한 목욕문화의
원조 격인 일본에서 <목욕하러 한국에 원정 온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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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시설이 괜찮다는 대중목욕탕엘 가보면 별의 별 희한한 게 많습니다.
단순히 한증막 수준이 아니라
옥, 황토, 참숯, 한방.. 최근엔 이 수준을 넘어서 자수정 사우나도 등장했더군요.
좀 있으면 미역/ 다시마 사우나, 다이아몬드 사우나도 생기고 엽기적인.
선지 사우나, 사골 사우나, 요오드 액 사우나가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들어가 보면 탕도 가지가지입니다. 예전엔 기껏해야 온탕, 열탕, 냉탕이었는데,
요즘엔 약탕, 이온탕, 폭포수탕, 거품탕, 무슨무슨 나무탕 등... 설명 없이는,
무심코 들어가기엔 <두렵고 떨리는...> 탕도 많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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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5일 크리스마스 때...생긴 지 얼마 안 된 500평 규모의 목욕탕엘 갔었습니다.
집 근처가 아니라 다니는 회사 근처입니다. (엄청 큰 곳)
큰 녀석을 제외한 아내와 작은 녀석...이렇게 셋이 예배 끝난 후 찾아갔습니다.
공휴일이지만 화요일이기에 문을 열었으리라는 확신을 갖고 방문했습니다.
다행히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성업 중이었습니다.
남탕과 여탕 사이에 <불가마 솥 방>이 있었는데 그곳은,
매점과 휴게실, 마사지실등도 함께 있는 제법 큰 공간이었습니다.
남녀 공용이므로 각각 목욕을 하다가 만나서 함께 있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준비된 얇은 셔츠와 반바지를 입어야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므로
그다지 민망스럽진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남녀 공용의 그 공간에는 돔 모양의 불가마 솥 방이 두 개 있었습니다.
안에 들어가 보니 벽면이 황토였고 다른 하나는 벽면이 자수정이었습니다.
외관은 얼음으로 만든 에스키모 인들의 집 <이글루>를 연상하면 되겠습니다마는,
겉과 달리 내부는 후끈 후끈 숨이 막히고 뜨거운... 그야말로 불가마 솥이었는데,
아무리 한정된 공간이라 하지만 지나치게 자리다툼이 치열했습니다.
옆 사람이 일어나면 앉아있던 사람이 얼른 눕기도 하고 어떤 아줌마는 큰 소리로
<자리 생겼다!>며 남편을 부르기도 합니다. (한 손으로 자리를 <찜>한 채.)
와중에 일부 젊은 남녀는 거의 꼭 껴안은 채 땀 흘리며 극기 훈련 중이었고,
눈 감고 가부좌한 상태에서 도인처럼 꿈쩍 않는 할아버지도 볼 수 있었습니다.
땀 빼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고 애쓰는 모습...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양보나 배려 같은 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종종 예의 없는 민망스런 장면들이 노출 되었는데......
좌우간,
젊은이가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거나 노인이 젊은이에 비해 여유 있거나 한
정상적인 장면은 도무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반팔 셔츠와 반바지를 입었지만 땀에 젖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볼 만하다고요? 그런 사람 몇 안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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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약속을 한 것은 아니지만... 봐서 아내가 그곳에 오기로 했고
이왕 들어왔는데 그냥 나갈 수도 없고 해서 작은 녀석과 들어가 비비고 앉긴 했습니다.
그러나 곧 꼴불견과 민망스러운 장면들을 보고 있자니 버티기 힘들었지요.
다시 밖에 나가서 빈둥대다가 더 이상 아내가 올 기미가 보이질 않아
남탕으로 돌아와서 땀을 씻고 나왔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불가마 솥...갈만한 곳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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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날 목욕한 것은 잘 한 겁니다.
이틀 후 교통사고를 당하고는 약 3개월 동안 목욕다운 목욕......
할 수도 없었고 아무리 하고 싶어도 못했다는 거 아닙니까.
2002.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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