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교회에 등록한 분으로 함께 찬양하고 있습니다. 교회 홈피에 올린 글인데 퍼왔습니다. '공부는 놀면서 하는 겁니다'의 저자(김용배)입니다.
단추는 멋이 없다. 단추의 개념은 나에게서 너, 혹은 너에게서 나를 간단하게 분리하는 것이다.
지퍼는 더 멋이 없다. 이 쪽과 저 쪽의 분리가 기계적이다. 도식적인 면도 있다. 도무지 냉정하기 짝이 없다. 이음 또한 간단하기 그지없다.
단추나 지퍼는 본시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것은 매거나 엮음으로 오로지 한다.
갓 끈을 묶는 것은 과시할 신분을 묶는 것이지만 짚신을 엮는 아버지는 사랑을 엮는 것이다. 가장 작은 짚신은 막둥이에게 향한 사랑을 엮는 것이고 그보다 조금 큰 짚신은 그 위의 아이에게 향한 사랑을 엮는 것이다. 남편을 출근시키기 위해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아내는 사랑으로 두루마기 끈을 매어 줬을 것이며 전장에 나가는 남편을 위해 아내는 애틋한 심정으로 전포의 끈을 매듭지어 줬을 것이다.
지금은 옛일들이 되었지만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네 이 정서만큼은 변함이 없다.
1.
우리네의 정은 참으로 끈끈하다. 우리네의 정은 단추처럼 간단하게 이어지거나 지퍼처럼 단 한번의 동작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서로에게 향하는 정은 엮고 묶는 정성을 다한 결과로 나타난다.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는 거의 체포 수준으로 딸을 묶고 엮는다. 치마, 저고리, 윗옷...어느 한 곳이라도 묶거나 엮지 않는 곳이 없다. 예식장에서 대여한 몇 푼짜리 드레스로 딸을 시집보내는 것이 아니라 정성으로 묶고 사랑으로 엮어 시집보낸다. 딸을 묶고 엮는 어머니의 가슴은 끈과 함께 묶이고 엮인다. 그 딸은 또 그 다음 세대의 딸을 그렇게 묶고 엮어서 시집보낸다. 끈으로 묶거나 엮는 일은 바로 상대에게 정을 내보이는 일이다.
2.
오래전부터 단추를 사용했으며, 그리고 다시 지퍼를 개발한 먼 나라 사람들의 정은 단추같고 지퍼같다.
유대감 형성과 서로에 대한 소통이 단호하다. 즉, 서로를 묶거나 엮으려하지 않는다. 만남이 단추같고 헤어짐은 더 간편한 지퍼같다. 요즘 우리네 사람들에게도 편리위주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정은 사랑의 다른 말이건만 요즘은 우리네에게서도 진정한 사랑을 찾기 힘들다.
3.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오랫동안 글을 놓았다. 뻥 뚫린 터널의 저쪽을 보고 싶었는데 나는 먹물같은 동굴 속에 오래도록 갇혀있었다.
한번 놓친 끈은 처음을 되잡기 힘들었다. 솔잎을 거부한 송충이로 오랜 기간을 지냈다.
내 소설은 5년 전에 출판된 이후, 지금까지 서점에 얼굴을 내밀지 못했고 그 외의 몇 종류의 책들은 3년전 출판이 마지막이었다.
긴 방황의 결과였다.
4.
넉넉한 끈같은 사람들을 만났다. 우연이었고 길에서였다. 그들의 끈은 하나같이 고래 힘줄만큼이나 질겼다.
그들 중에는 두루마기의 끈처럼 생긴 사람도 있고 대님 끈처럼 생긴 사람도 있었으며 아예 지푸라기처럼 생겨 짚신으로 완성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나를 묶었다. 꽁꽁.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더 바짝 나를 죄일수록 나는 더 편안해졌다. 그들은 나를 하나님 앞으로 데리고 갔다.
5.
그냥, 남아있기에 존재했던 내 책 몇 권을 그들에게 선물했다. 끈들은 무수히 많았지만 남아 있는 책은 그들의 숫자에 이르지 못했다.
끈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말은 터무니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길고 긴 방황이 이제는 끝임을 깨달았기에 다시 쓰게 되었다.
오랫만에 맞이한 나의 옛 친구 평안. 글이... 내게로 왔다.
6.
멋진 끈들만 모여 있는 곳에 나는 와 있다. 그러자 사랑도...내게로 왔다. 이제는 사랑으로 말해야겠다. 나도 묶어야겠다. 나도 엮어야겠다.
갓 끈처럼 교만한 끈이 아닌, 정성으로 딸을 묶고 엮어 시집보내는 어머니처럼. 사랑하는 남편의 전포를 엮어 전장에 내보내는 애틋한 심정의 아내처럼. 사랑으로 짚을 엮어, 그 고난한 밤을 지새워 만든 신을 자식에게 나누어 주는 아버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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