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글

그녀 이야기

malmiama 2006. 8. 22. 20:46

Pia님의 '그녀 이야기'를 읽고 자극받아(기억 나~) 옛글을 찾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예전엔 흔하지 않았던 남녀공학을 다녔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첫 날 바로 옆에 앉은 여학생은 참 예뻣습니다.
30 여명 여학생 중 단연 돋보였습니다.
말 없이 다소곳했지만 건방진듯한 미소가 맘에 들었습니다.

내 옆에 앉았으니 당연히 책임져야 하는 줄 알고 관심을 나타내게 되었고,
나름대로는 재미있게 대했으므로 곧바로 찐한 아니,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만년필을 탐내길래 주었던 기억도 희미하게 납니다. (빼앗겼던가?)
사춘기 들어 이성으로서는 처음 사귀게 된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웃기는 얘기지만 당시엔 빠른 편이었지요.

공부도 매우 잘했던 그녀가(나보다 잘 하면 매우...지요.^^)

노래도 잘 하는 걸 보고 매력이란 것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음악시간에 <도라지 꽃>을 독창했을 때 모든 남학생들이 '뿅~' 갔더랬습니다.

그녀와 매일 학교에서 만나고 대화하면서도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우표를 붙여서 집으로 보내고 답장을 받고... 잘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받은 편지 내용 중 세 가지는 대충 기억납니다.

1. 집에서 벌써부터 남자친구를 사귄다고 걱정한다. 오빠가 충고를 한다.
2. 나 보다 강아지가 먼저 편지를 받아 보았다. 지금 물어 뜯어 놓은 편질 보고 있다.
3. 주머니에 돈 넣고 나와서 맛있는 거 사주라.
(공주병이 있는 듯 하긴 했지만 예쁘니까 용서해 주기로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대로 그녀 친구들의 비호를 받아가며 한 학기를 잘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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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때 비인 해수욕장에 함께 가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학교 주최로 희망자를 모아 단체로 가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약속을 어기고 가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었던 이유는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 알았지요.)
좋은 곳 다 물리치고 그곳에 가기로 한 것은 전적으로 그녀 때문이었는데...

불쾌했지만 막상 비인 해수욕장에 가서는 다 잊고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평소 저를 눈여겨 보았던 다른 여학생의 접근도 허용하게 되었고,
결국 2학기가 되어서는 사귐의 대상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와 멀어진 것은 아닙니다.
3년 내내 같은 반이었으니 멀어질 수도 없었습니다.
그냥 부담없는 친구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졸업한 후엔 그녀의 애인이 군에 가 있을 때 제가 보호자(^^) 역할도 해줬습니다.

자주 만나진 않았지만 그런대로 서로의 삶을, 아픔을 알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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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점심 때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습니다.
우리 회사쪽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그녀를 제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예쁩니다.   탤런트 이경진을 쏙 빼닮았습니다.
아니, 이경진이 그녀를 닮았습니다. 

구이를 좀 먹고 그녀는 물냉면 나는 비빔냉면을 먹었습니다.
배고프지 않다고 했는데 막상 식사가 나오자 '맛있게도 냠냠'이었습니다. 

부담없는 친구를 만났기 때문에 잃었던 식욕이 살아났을 수도 있었겠지요.

최근들어 남편과의 갈등으로 무척 힘들었나 봅니다.
말라있었습니다. 생각 같아선 매일 만나서 맛있는 걸 사주고 싶었습니다.

만나면 늘 신앙얘기를 내가 일방적으로 하곤 했었는데 어제는 하지 않았습니다.
힘들어 보였기 때문에 시비 거는 걸 자제했습니다.

성품이 온화하고 심성이 맑은 그녀는...예전엔 성당엘 다녔었는데

지금은 이러 저러한 이유로 다니질 못하고 있습니다.
그녀를 아름답고 풍요로운 진정 행복한 삶으로 인도해 주고 싶은데 쉽지 않습니다.

이곳 칼럼 주소를 적어줬습니다.   아마 오늘 이 글을 볼 것입니다.

기념으로 한마디...

"...MJ씨...찬양대에서 함께 찬양했음 좋겠당...(소프라노 급구!)"

점심식사 후 기분전환을 위해 극장에 함께 가자는 유혹을 물리치고 헤어졌습니다.
사실 회사일로 바쁘지만 않았으면 <봄날은 간다>를 보러 갔을 것입니다.

저는 그녀가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무엇보다 주 안에서 함께 동행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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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얘기만 하다보니 깜박했습니다.  

 

그녀 옆에는 제 아내가 있었습니다.  둘이 언니 동생하면서 무척 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