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때 바지를 입었나 살펴보는 까닭
나는 울 집 유민이와 달리 다섯 살이 되어서야 말이 트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문이 트이면서 가속도가 붙어 글도 빨리 깨우치고...생긴 것에 더해
온종일 무쟈게 종알종알 거리면서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는데,
말만 잘한 게 아니라 늘 궁금한 게 많아 묻기 잘하고 참견도 잘하는 아이였다는군요.
(여기서부터는 유민이와 같은 수준...ㅎㅎ)
어머니가 화장대 앞에 앉아 계실 때면 옆에 바짝 붙어 꼬치꼬치 캐묻기 일쑤였고
외출하시면 스스로 화장을 해서 여자로, 귀신으로 변신하기도 했습니다.
별명이 <만물박사>였는데 쬐그만 게 아는 것 많고 표현도 잘했기 때문이었겠습니다.
어머니의 지나친 교육열 땜에 조기교육을 받아 또래 애들에 비해 좀 더 깨우쳤기에
주변으로부터 늘 추켜세움을 받았습니다.
스스로도 굉장히 똑똑한 아이인 줄 알았기에 내가 나서지 않으면 세상이 어떻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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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꼬맹이들이 그렇듯이 등교하기 위해선 나 역시 항상 바빴습니다.
미리 미리 준비하거나 일찍 일어나는 내가 아니었고, 어머니는 소지품이나 과제물을
챙겨주지 않는 냉정파였기에 아침이면 정신이 없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그 날도 매우
바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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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겁지겁 서둘러 통학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아 한 숨을 돌리는데, 옆에 앉은 녀석이
내 아랫도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이런~! 아뿔사! (그때도 이런 단어를 구사했던 것 같습니다~ㅋ)
바지를 안 입은 것이었습니다. 당시 교복은 빵떡모자에 와이셔츠와 나비넥타이,
빨간 콤비, 그리고 까만 타이즈에 까만 반바지였는데 깜박 잊고 반바지를 안 입고
나온 겁니다.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우짭니까.
까만 팬티 스타킹으로 버틸 수밖에.
그 날은 토요일이었습니다.
매 달 마지막 주 토요일 끝 시간은 항상 학예회를 했습니다.
팬이 많았던 나는 그 시간에 반드시 앞에 나가야만 했습니다.
그 날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중하고 있었는데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하며
아이들이 성화였습니다. 결국, 고민을 하다가 다음 순서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곤 나보다 훨씬 작은 짝꿍녀석을 협박해서 바지를 벗겨 입고 출전했습니다.
한 차례 너스레를 떨고, 앙코르로 노래도 하고 위세당당 들어와서 자리에 앉는데,
그만...'부욱~!' 바지 가랑이가 찢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악~~
짝궁에게 미안하고 난감했지만......
할 수없이 짝꿍도 바지를 벗어 버렸고 둘이 붙어 사이좋게 집에 갔습니다.
(마치 개그 코서트에 나오는...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이후로 나는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바지를 입었나 꼭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