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있는 자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1)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기드온'은 사실 딱하고 구차한 인물이었습니다.
기드온이 사사로 임명되었을 때 그는 소심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원래 밀 타작은 넓은 들판에서 하는데, 미디안 사람을 두려워해 포도주 틀에서 타작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기드온에게 나타나자 그는 심약한 자답게 약한 자기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느냐며, 몸을 사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상을 찍어 버리라고 말씀하셨을 때도 우상 숭배를 하는 가족과 성읍 사람들이 두려워 그 일을 낮이 아닌 밤에 할 정도였습니다.
그 후 미디안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향해 진격해 오자 그는 이스라엘 지파들을 불러모은 후 양털 한 뭉치를 가져와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이슬이 양털에만 있게 하시고 사면 땅은 마르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기드온의 간구에 그대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기드온은 또다시 간구했습니다. 이번에는 거꾸로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이슬이 있게 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번에도 그가 간구한대로 하셨습니다. 그제야 기드온은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양털 뭉치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열린 문, 닫힌 문이 처음에는 매우 합리적이고 무리가 없어 보였던 것처럼 양털 뭉치 또한 비슷합니다. 거듭하여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 신중해 보이고, 이슬이라고 하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이 일견 지혜로워 보이기는 합니다.
양털 뭉치는 열린 문, 닫힌 문처럼 얼핏 보기에는 옳아 보이지만, 한 꺼플 벗겨 보면 그 안에는 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열린 문, 닫힌 문 이야기에서도 확인한 것처럼 상황보다 앞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열린 문의 상황보다 기름 부움 받은 자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있었듯이 말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기온온과 반드시 함께 하셔서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 치듯 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말씀에 따라 미디안이 전쟁을 하겠다고 진을 쳤을 때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막상 미디안 연합군이 거대한 모습으로 진을 친 것을 보자 겁이 났던 것입니다. 심약했던 그는 대군의 모습을 보자, 승리를 보장하신 하나님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또다시 하나님을 확인하고 싶었고, 확인하되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양털 뭉치 방법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자신의 불신과 믿음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죄송해서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이라고 고백 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뜻을 시험한 기드온은 그래도 확신이 서지 않자 이번에는 이슬을 반대로 내리게 해 달라고 또다시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민망했겠습니까? 겸연쩍고 낯뜨거웠을 것입니다. 동시에 자신의 불신을 책망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던 그는 "주여 내게 진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다"라는 말을 하며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의심에 진노하실까 봐 두려워 진노하지 말아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기드온을 보면 슬퍼집니다.
하나님이 이미 몇 번에 걸쳐 말씀하셨고, 본인도 이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두려운 나머지 두 번씩이나 하나님을 시험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기드온을 버리거나 진노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봐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양털 뭉치를 사용하는 기드온의 방법이 옳아서 그를 용납하신 것이 아니라 그를 긍휼히 여겨서 용납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용납하신 것이고, 이런 과정을 통해 기드온을 기르기 위해 용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확실히 심어 주기 위해 특단의 방법을 쓰셨습니다. 겨우 3백 명으로 치룬 전쟁에서 승리를 주셔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치셨습니다.
양털 뭉치도 열린 문, 닫힌 문과 같이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응답하신 것은 그의 특별함 때문이었습니다. 기드온이란 사람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가 담당하고 있는 직책과 사명이 특별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사사로서 그들을 인도하여 미디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는 것은 특별한 직책입니다. 이런 특별한 일을 위해 쓰임받은 자이기 때문에 거듭되는 불신과 그릇된 시험에도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 경우를 빼고는 기드온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는 말씀도 없습니다. 기드온의 분별 방법은 성경에 나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기드온의 방법이 바람직하다면 다른 본보기도 있어야 하고,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는 말씀도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없습니다.
*출처:<내 뜻인가, 하나님 뜻인가/정요석>
*예고 : 믿음이 있는 자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