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크리스천

선물 잘 받는 사위

malmiama 2001. 5. 19. 17:38
저는 뇌물은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신경질적으로 싫어 하지만
선물이라 판단되면 주는 것도 좋아하고 받는 것도 넙죽 넙죽 잘 받습니다.
받는 걸 <좋아한다>하지 않고 <잘 받는다>고 표현한 건 그 이유가 있습니다.

선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번쯤 마다하거나 체면상 펄쩍 뛰며 극구 사양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니면 제 아내처럼 받을 자격이나 명분 운운하며 거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선물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해 보셨겠지만 어떻습니까?
선물을 받았을 땐 부담이라는 잔재가 남을 수 있지만 내가 선물을 했을 때
상대방이 무척 좋아한다면 그게 훨씬 기쁘고 보람차고 흐뭇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적으로 누가 선물을 제게 하면 자알 받습니다.
제게 선물을 한 사람이 얼마나 기쁘고 보람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도 요즘 잘 받습니다. ... 잘 봅니다.)

제게 선물을 가장 많이, 자주하는 사람은 바로 장모님입니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 하지만 제 장모님 만큼 사위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귀여워 해주고 자랑스러워하고 선물을 늘 챙기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입니다.

낼 모래 칠순. 그러나 얼마전까지만 해도 권사님에, 성가대원에, 꽃꽂이 담당에,
무슨무슨 회장에... 지금은 많이 줄였지만 그래도 항상 비서가 필요할 정도로
바쁘고 빡빡한 일정 속에 사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사위는 챙깁니다.

며칠 전에 장모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네, 이서방되겠습니다. 건강하시지요?"
"그런데 자네, 낼 모레 점심 때 시간 좀 낼 수 있나? 양재동 XX에서 만나세."

순간 제 생일을 또 챙기려 하시는구나...감을 잡았습니다만, 이번엔 제 사정이
달랐습니다. 정말 시간을 내기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양복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마춰 준 양복도 멀쩡하고...여름양복은 쓰임새가 적거든요.

게다가 어버이날 이틀전에 장인과 함께 일본에 가시는 바람에 어쩔까나 하다가
5월 7일. 장모님 통장에 쓰시라고 몰래 입금을 해 놨는데, 분명
그 입급한 돈 이상으로 다시 제게 쓰시려는 게 분명했거든요.

"아, 도저히 시간이 안되겠는데요. 그리고 진짜로 양복 필요없어요."
(처음으로 제가 선물을 거부하자 장모님이 조금 당황~)

"대신 혁대 하나만 사주세요. 몇 개 있는데 다 헐었거든요."

필요한 거 사주는 게 선물의 가치를 드높인다는 설득에 양보(?)하시는 장모님.

그런데 말입니다. 결국,
생일 전날 아이들만 집에 있을 때 장인어른과 함께 급습(?)을 하셨는데
혁대는 물론 케익에 갖가지 밑반찬에...미역국까지 끓여 놓고 가셨답니다.

혁대. 정말 맘에 들었습니다. 우선 쓸데없이 브랜드값만 비싼 그런게 아니었고
제가 말은 안했지만 원했던 디자인에 색상에...(아! 以心傳心이란 이런거구나!)
제가 무지 좋아한다는(진짜로) 얘길 들으시면 또 얼마나 좋아하실까 생각하니까
기분이 더더욱 좋았습니다.

15년 전 일이 생각납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장모님 눈엔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하나뿐인 딸. 당신이 반대하던 사위. 기특함...등등 만감이 교차하셨겠지요.

제가 다가가서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딸을 잃으신 게 아니라 쓸만한 아들 하나 얻으신 겁니다. 잘 할께요."

이후 저는 그때 제가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아내가 시댁에 잘하는 것에 비하면 택도 없지만 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받은 게 너무 많은 제가 보답하려면......

지금처럼 선물만 넙죽 넙죽 잘 받는 것으론 안되겠지요?